세계 최대의 자동차 메이커 'TOYOTA'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07/11/20 13:16 | 조회 : 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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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ADA no.88 2007 .11]


일본인도 평생 한 번 가보기 어렵다는 고급 요정. 기모노를 정갈하게 차려입고, 새하얀 분칠로 표정을 감춘 게이샤가 그림자처럼 소리 소문 없이 우리 주위를 오간다. 조막만한 접시에 오밀조밀 음식을 담아내고, 앙증맞은 잔에 방울방울 전통술을 따른다. 극진한 대접에 온 몸이 긴장으로 굳어, 괜스레 젓가락질이 신중해지고 잔에 닿은 입술은 오므려진다.

허기를 채운 자리에 취기가 사르르 내려앉을 무렵, 게이샤가 춤을 춘다. 고기잡이 나간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의 심정을 표현한 춤이라는데, 가사는 이해할 길 없으나 미묘한 가락과 절제된 동작이 심금을 울린다. 하지만 게이샤의 표정엔 변화가 없다. 보일 듯 말 듯 간혹 찡그릴 뿐, 결코 슬픈 감정을 드러내는 법이 없다. 절제가 의무라도 되는 것처럼.

공연을 마친 게이샤, 어느새 우리 곁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자욱한 담배연기에 눈 하나 깜짝 않고, 쉴 새 없이 종종걸음 치면서 땀 한 방울 내비치는 법이 없다. 쇼 케이스 속 마네킹처럼, 게이샤는 처음의 모습을 흐트러짐 없이 유지한다. 술자리에서 새삼 느낀 숭고한 직업의식. 피로에 취기까지 덮쳐오면서 눈꺼풀은 무거워졌지만, 머릿속은 차갑게 식었다.
 



정성껏 만들어 소중히 쓰는 문화

한밤중이 되어서야 돌아온 숙소. 유리창의 빗방울에 오색빛깔로 얼룩진 야경을 바라보다 잠이 들었다. 햇살에 눈이 부셔 잠을 깼다. 몇 분 단위로 나뉜 빡빡한 스케줄에 몸과 마음이 바쁘다. 호텔 현관에서 전세버스에 오르려다 거리를 오가는 자동차에 시선이 멎었다. 밤사이 비가 내렸는데, 어찌된 일인지 거리의 자동차는 하나같이 ‘반짝반짝’이다.

가이드로 나선 재일교포 고토 씨가 궁금증을 풀어준다. “주위를 달리는 자동차 좀 둘러보세요. 정말 깨끗하죠? 주말이면 많은 일본인 가족이 유원지를 찾는데요, 정성껏 싸온 음식을 먹은 뒤 뭘 하는지 아세요? 아빠는 유리와 지붕, 아내

는 도어, 아이는 실내를 열심히 닦습니다. 일본에선 자연스러운 풍경이에요. 다들 틈만 나면 정성껏 차를 닦거든요.”

설명은 계속된다. “일본인들 물건에 대한 애착이 대단해요. 이런 애착은 물건을 정성껏 만드는 것 뿐 아니라 소중히 쓰는 데까지 이어집니다. 자동차를 깨끗이 관리하는 문화의 배경 또한 이런 데 있는 셈이지요.” 두 눈 부릅뜨고 다시 살펴도 땟국 줄줄 흐르거나, 찌그러진 채 달리는 차를 찾기 어렵다. 심지어 영업용 화물차조차 말끔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문득 알프스 산자락의, 아름다운 꽃으로 창틀을 수놓은 전원주택이 떠올랐다. 처음엔 넋 놓고 감탄하기 바빴는데, 훗날 배경을 듣고 적잖이 놀랐다. 창틀 꾸미기가 하나의 문화란 얘기였다. 거기까진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썰렁하게 창틀을 내버려뒀다간 표 나진 않되 싸늘한 시선을 받게 된다는 얘기를 듣고,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문화는 오랜 세월에 걸쳐 다수의 암묵적 동의와 지지를 통해 뿌리 내린다. 어떤 준거집단에서 특정한 문화가 굳건한 틀을 형성했다는 건, 주류에 반하는 소수의 행동이 어느 정도 제제를 받아 사그라졌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면 물건을 소중히 다루고, 아껴 쓰는 일본의 문화 또한 집단의 보이지 않는 종용에 따른 결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이를 테면 이런 거다. 꾀죄죄한 차를 몰고 나서려다가도, 사람들이 날 얼마나 우습게볼까, 시원찮은 인간으로 낙인찍힐까 불안해 걸레를 집어 드는 건 아닐 런지. 물건을 만들 때도 대충 만들었다 흠이라도 잡히면, 따돌림을 받지 않을까 두려운 건 아닐까. 흠잡을 데 없이 깔끔한 거리의 자동차에서 느낀 시샘과 질투에서 비롯된 음모론일 뿐이니 괘념치 마시길.

그 배경이 자기만족을 위해서든 보이지 않는 강요 때문이든, 물건에 애정을 듬뿍 쏟는 모습은 아름답고 또 바람직하다. 호텔주변 골목어귀의 아담한 마트에서 가쓰오부시를 사면서 난 다시 한 번 경악했다. 비닐봉지에 가쓰오부시를 담고선 각 귀퉁이를 잡아당겨 각을 잡더니 접착 테이프까지 살포시 붙여 건네는 점원의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
 



산업기술기념관의 이모저모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전통 공연이나 온천 체험, 일본식 정찬이 빠지지 않는 토요타의 초청 행사 일정엔 일본을 먼저 이해시키기 위한 배려가 깔려 있었다. 이번 출장이 유독 흥미로웠던 건 일본의 올곧은 직업의식과 만드는 쪽이나 쓰는 쪽 모두 물건을 소중히 여기는 문화 등 두 가지 ‘코드’를 염두에 두고 둘러본 까닭이었다.

토요타와 관련된 일본 출장을 몇 차례 다니면서, 나의 관심은 어느덧 자동차란 기둥에서 벗어나 일본의 문화로 잔가지를 뻗어가는 느낌이다. 일본 특유의 문화나 사고방식에 조금씩 눈을 뜰수록, 토요타의 경영이나 생산방식, 제품에 대한 이해 또한 서서히 그 폭과 깊이를 더해가는 놀라운 경험을 거듭하는 중이다.

렉서스 LS600hL 시승을 마친 다음날, 우린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나고야에 자리한 토요타 산업기술기념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1993년 6월 19일, 토요타 자동차의 창업자, 토요타 기이치로(豊田喜一郞)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문을 연 토요타 산업기술기념관은 토요타 그룹의 13개 계열사가 공동으로 옛 토요타방직 본사 공장을 리노베이션해 완성했다.

기자단은 기념관을 둘러보기에 앞서 관장의 브리핑을 들었다. 개인적으론 세 번째 방문인데, 관장은 바뀌었지만 내용은 거의 같았다. “토요타의 제조업 역사는 방직기에서 자동차로 이어졌어요. 우리는 이곳을 통해 토요타의 발자취를 알리고, 젊은이에게 물건 만들기 및 연구•개발의 중요성을 알리고 있지요. 개관 이후 누적 관람객만 200만 명을 헤아립니다.”

산업기술기념관의 널찍한 로비 중앙엔 기이치로의 아버지, 토요타 사기치가 1942년 개발했다는 ‘환상직기’가 우뚝 서 있다. 평면적인 설계에 머무르던 이전의 고정관념을 깨고 3차원의 개념을 도입해 만든 직기였다. 로비를 지나 전시장으로 들어가면 토요타 직기의 초창기 시절 제품들이 줄지어 서있다. 토요타 이름 선명한 실 짜는 기계가 낯설기만 했다.

시대별로 전시된 직기엔 실제 날줄과 씨줄이 물려 있었고, 스위치만 켜면 덜커덕거리며 천을 짰다. 벨트와 기어가 물려 돌아가는 정교한 모양새에서 자동차 엔진과의 유사성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었다. 전시장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길수록 점점 현대화된 직기가 모습을 드러낸다. 자동차가 그렇듯이 최신 제품일수록 소음은 적고, 속도는 빨랐다.

이어서 토요타 자동차의 과거와 오늘을 함축해 놓은 자동차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토요타 최초의 양산 모델, AA 승용차와 G1 트럭은 물론 당시의 생산라인까지 재현해 놓았다. 아울러 600톤 규모의 프레스기와 엔진, 새시 자동 조립장치, 용접 로봇 등 최신 기계를 골고루 전시했다. 우린 자동차관 한쪽의 상영관에 모여앉아 토요타의 여명기를 엿볼 수 있었다.
 



방직회사의 자동차 사업부로 출발

영상물은 27세의 동경대 기계과 출신 토요타 기이치로가 뉴욕에서 배를 타고 일본으로 돌아오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뉴욕을 둘러본 뒤 충격에 빠진 그는 마음속으로 ‘공업을 부흥시켜 일본을 풍요롭게 만들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2년 뒤 그는 표면적으론 자동직기 특허권 계약을 위해, 실제로는 자동차 산업을 좀 더 꼼꼼히 살피기 위해 미국을 다시 찾는다.

1930년 미국에서 귀국한 기이치로는 깜짝 선물을 받는다. 방직기 회사를 운영하던 아버지 토요타 사기치(豊田在吉)가 자동직기 특허권을 영국에 팔아 마련한, 당시 돈 100만 엔을 자동차 연구•개발비로 쓰라며 기이치로에게 준 것. 오늘날의 가치로 환산하면 백억 원 이상의 자금. 관련 자료에 따르면 당시 사기치는 아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기이치로야, 난 평생을 방직기를 개발하고 그것을 발전시키는 일로 나라에 충성을 다했다. 우리 시대엔 방직과 견직이 국가의 부를 창출하는 가장 중요한 산업이었기 때문이었어. 하지만 다가올 20세기는 자동차의 시대야. 내가 자금은 대줄 테니 넌 좋은 자동차를 만드는 것으로 나라에 충성을 다해라.”

이듬해 아버지가 세상을 뜨면서 사장 자리에 오른 기이치로는 1933년 9월 토요타 직기 내에 자동차부를 만들고, 직원 몇 명과 함께 시작차 만들기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무엇 하나 쉬운 게 없었다. 시보레를 한 대 사서 낱낱이 분해한 뒤 부품을 똑같이 베껴 다시 조립하려는 것뿐인데, 넘치는 의욕과 달리 결과는 시원치 않았다.

조심스러운 손길로 모래를 털고, 거푸집을 벗길 때마다 모두의 얼굴엔 실망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수없는 실패를 거듭한 끝에 가까스로 엔진의 모습을 갖추고 나니, 이번엔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매번 푸드득거리며 블록을 깨뜨리기 일쑤였다. 또 다시 셀 수 없이 많은 밤이 지난다. 그러던 어느 날, ‘부르릉~’ 경쾌한 소리와 함께 엔진이 기운차게 돌기 시작했다.

직원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며 서로 얼싸안았다. 첫 번째 과제를 해치운 이후의 과정은 일사천리였다. 1934년 9월 첫 프로토타입 엔진을 완성했고, 이듬해 5월엔 첫 시작차, A1을 만들었다. 같은 해 트럭 G1도 개발했다. “우리 손으로 자동차를 만들어 일본의 공업을 발전시키겠다”는 기이치로의 오랜 염원이 현실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기이치로는 지금의 토요타시 자리에 땅을 사서 공장을 지었다. 그리고 1936년 3월 A1, 5월에는 G1의 양산에 들어갔다. 9월에는 역사적인 새차 발표회도 가졌다. 나아가 1937년 8월, 토요타자동차 주식회사가 설립되었다. 토요타 사기치가 후원의지를 밝힌 이후 8년 만에 기이치로는 독자 모델을 생산하는 번듯한 자동차 회사를 세웠다.
 



어려운 시절 경험, 회사 체질로 굳어

오늘날 세계 최대의 자동차 회사로 군림하는 토요타지만, 지금껏 걸어온 과정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특히 2차 대전을 겪으며 자재를 구하기 어려운 가운데, 승용차와 트럭 생산을 병행하면서 위기를 맞았다. 설상가상으로 노동쟁의까지 일어나 회사는 부도직전에 몰렸다. 1천500명의 노동자를 감원하고, 임원을 물갈이 하는 등 회사가 한바탕 들썩였다.

기이치로는 은행채권단에 융자를 더해줄 것을 간청했지만 그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망해가는 회사에 자금을 더 댈 수 없다며 거절했다. 채권단과의 줄다리기 협상 끝에 토요타는 판매회사를 새로 만들어 융자를 얻기로 한다. 채권단은 경영악화의 책임을 지고 기이치로가 회사에서 물러날 것을 조건으로 걸었다. 기이치로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토요타자판의 사장은 사기치와 기이치로 밑에서 회사살림을 돕다 토요타직기 사장까지 오른 이시다가 맡았다. 자동차를 잘 몰랐던 이시다는 기이치로의 사촌동생, 에이지와 당시 일본에서 ‘판매왕’이라 불리던 판매회사 사장, 가미야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 회사재건에 나섰다. 모르는 걸 부끄러워 않고, 스스럼없이 도움을 청해 귀 기울일 줄 아는 경영자였다.

이시다는 지독한 구두쇠기도 했다. 차급에 넘치지 않는 수준의 부품을, 꼭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만 사도록 했다. 회사에 돈이 없어 담당직원이 트럭을 끌고 부품회사를 돌며 반나절, 혹은 몇 대분의 부품만 사서 자동차를 만들었다. 토요타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간 ‘간판방식’과 ‘저스트 인 타임’은 이시다의 이런 구두쇠정신을 배경으로 태어났다.

구두쇠 정신은 부품의 불량률을 줄이는 데까지 영향을 끼쳤다. 부품 고장은 라인을 멈춰 서게 했고, 이는 고스란히 손실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토요타는 금융지원 등의 노력을 통해 협력업체의 기술수준을 끌어올렸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연구는 지금도 쉴 새 없이 계속되고 있다. 춥고 배고팠던 시절이 오늘날 토요타의 단단한 초석이 된 셈이다.

이처럼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더 나은 것을 찾는 노력은 토요타가 만들어 전 세계 자동차 업계가 보통명사로 쓰는 ‘카이젠’(改善), 즉 ‘개선’에 함축되어 있다. 독일 남부 뵈르스에 자리한 메르세데스-벤츠 유니목 공장을 방문했을 때 이 단어를 만난 적 있다. 세계 최초의 기술력을 뽐내는 독일 메이커조차 스스럼없이 토요타를 배우고 있었다.

현재 일본의 토요타 직원은 6만5천 명. 일본에 15개의 공장을 거느렸는데, 토요타시가 속한 아이치현에만 12개, 그 가운데 10개는 토요타시에 있다. 협력업체의 80%가 토요타시에서 90분 이내 거리에 자리한다. 지난해 3월부터 올해 3월까지 토요타의 총 생산대수는 8천180만 대. 토요타 그룹은 다이하쓰, 히노 이외에 13개의 계열사를 거느렸다.

 

토요타 노하우의 결정체, 쯔쯔미 공장

산업기술기념관을 둘러보며 토요타의 역사를 엿본 우린 버스를 타고 쯔쯔미 공장으로 향했다. 이론수업을 마치고, 현장학습에 나서는 기분이었다. 쯔쯔미 공장은 나고야시에서 버스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토요타시에 자리한다. 1970년 세워진 쯔쯔미 공장의 부지는114만㎡, 건평은 61만㎡. 돔형 야구장 23개를 합친 것과 맞먹는 크기란다.  

쯔쯔미 공장에선 6천300명의 직원이 오전 6시25분~오후 3시15분, 오후 4시10분~새벽 1시의 2교대로 근무하면서 한 달에 3만6천 대의 자동차를 생산한다. 하루 1천200대의 새차가 굴러 나오는 셈이다. 몇 년 전 이곳을 찾았을 때와 생산대수는 같은데, 직원 수는 200명 가까이 줄었다. 그건 생산성이 더욱 높아졌다는 걸 의미한다.

전시동을 지나 가파른 계단을 오르자 본격적인 공장 투어가 시작되었다. 공장 안 풍경은 겉모습과 마찬가지로 화려한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지은 지 20년이 훌쩍 넘은 만큼 손닿는 곳마다 세월의 더께가 내려 앉아 있었다. 같은 라인에서 사이언, 렉서스, 토요타가 뒤섞여 흘러나오는 점도 흥미로웠다. 이른바 혼류(混流) 생산방식이다.

쯔쯔미 공장은 토요타만의 생산 노하우로 똘똘 뭉친 곳이다. 대표적인 게 ‘콜 스위치’(Call switch). 문제가 발생했을 때 담당 직원이 줄을 당기면 바로 책임자에게 보고되는 시스템이다.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라인은 멈춰 선다. 직원은 줄을 당겨 실수를 인정하는 것을 두려워 않는다. ‘실패를 발전의 계기로 삼자’는 토요타의 철학 덕분이다.

개선을 위한 ‘건의’에도 적극적이다. 회사 측은 ‘건의’를 장려하기 위해 한 건당 500엔에서 20만 엔의 상금을 지급하고 있다. 지난해 토요타는 직원들로부터 70만 건 이상의 ‘건의’를 받았다. 똑같은 시스템의 토요타 해외공장이 일본 내 공장보다 생산성이 뒤처지는 이유가 ‘문제 해결 중독증’이 일본의 토요타 직원을 따라가지 못하는 데 있다고 들은 적 있다.

‘도어 없는 조립공정’(Doorless assembly method)도 시선을 끈다. 쯔쯔미 공장에선 차체가 완성된 후 시트, 대시보드 등 내장재를 넣는 단계로 넘어가기 직전, 도어를 다시 떼어낸다. 작업 능률을 높이고, 차체에 생채기 날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다. 도어는 위쪽의 선반에 매달려 차체가 흐름을 졸졸 따라 다니다가 내장재 조립을 마치면 다시 조립된다.

익히 잘 알려진 토요타의 생산 방식도 흥미로웠지만, 정작 내 관심을 사로잡은 건 누가 지켜보든 말든 개의치 않고, 진지한 표정으로 작업 삼매경에 빠져 있던 근로자의 모습이었다.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바람직한 직업의식, 물건 만들기의 소중함의 두 가지 ‘코드’가 다시 뇌리를 스친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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