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와 국민감정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07/10/05 01:05 | 조회 : 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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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ADA no.86 2007 .09]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은 미국 내 흑인의 인권운동을 이끌어낸 개신교 목사다. 그는 1964년 활발한 인권운동을 인정받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신학을 공부하면서 보수적인 기독교 근본주의를 탈피해 진보적 자유주의 기독교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1955년 흑인 여성이 버스 안에서 백인 남자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아 체포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요즘 기준으로 상상할 수 없는 인종 차별이었으나 당시에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이를 계기로 미국연방법원에서 공동 집단에서 인종을 분리한다는 것이 위헌임을 판결했고, 이는 미국 각지의 인권 운동의 봉기점이 되기도 했다. 그가 본격적인 흑인 인권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였다.
 



국민 정서에 따라 차 이름도 바뀌어

마틴 루터 킹 목사는 꾸준한 인권운동을 펼쳤고, 1963년 인종 차별 철폐와 인종간의 공존이라는 주제로 링컨 기념관 앞에서 연설을 했다. 간결한 짜임과 평이한 단어 속에서 넓은 공감대를 형성한 이 연설이 바로 그 유명한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연설이었다. 이는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취임 연설과 함께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명연설로 손꼽히고 있다. 그는 이후 베트남 전쟁 반대운동에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인종간의 평화와 타협, 피부색이 달라도 하나의 인간으로 대우 받을 권리를 주창한 그에게도 분명 반대세력이 있었다. 요즘 말로 안티(Anti) 였다. 이런 저항세력에는 꼭 백인들만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적지 않은 수의 흑인 세력이 마틴 루터 킹의 비폭력 인권 운동을 백인들과의 타협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부유한 환경에서 자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출신성분도 그의 온건한 민권운동에 흠으로 잡혔다. 결국 1968년 반대세력에 의해 암살되며 생을 마쳤다.

이후 산업고도화 시대에 접어들며 인권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다만 인권운동의 시초이자 마틴 루터 킹에 대한 이야기는 공개적인 석상에서 꺼내들기 어려운 일이 되었다. 그를 지지하는 세력만큼이나 많았던 그의 반대 세력 때문이다.

갑작스레 인권운동과 마틴 루터 킹 목사 이야기를 먼저 꺼내든 이유는 분명히 있다. 자동차와 전혀 연관성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메르세데스-벤츠는 1990년대 말, G-바겐의 뒤를 이을 SUV M-클래스를 선보였다. 투박한 디자인의 G-바겐보다 한결 세련미를 더했고, 매일 타도 부담 없는 스타일에 다양한 편의장비까지 얹어 고급 SUV를 지향했다. 그러나 M-클래스가 등장한 이후에도 G-바겐은 명성을 잇고 있었다. 결국 M-클래스와 패밀리 룩을 이룬 새로운 GL-클래스가 2005년 공개되기도 했다. 새 GL-클래스는 M-클래스의 W164 플랫폼 위에서 개발했다. 당초 G-바겐의 후속으로 알려졌으나 결국 G-바겐은 여전히 독보적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렇듯 벤츠가 SUV를 개발함에 있어 덩치를 키워온 반면 경쟁 모델인 BMW는 X5의 아랫급인 컴팩트 SUV X3을 내놓아 인기 얻고 있었다. 포르쉐가 ‘박스터 이하 급으로는 더 이상 새 차를 개발할 계획이 없다’고 못 박은 시점과 비슷한 시기에 벤츠 역시 컴팩트 SUV에 관심이 없어 보였다. M-클래스보다 더 작은 SUV는 벤츠의 명성에 먹칠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시대는 그런 벤츠의 편견을 바꿔놓았다. X3과 랜드로버 프리랜더는 물론 한국의 현대까지 가세한 컴팩트 SUV 시장을 마냥 지켜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벤츠 역시 4세대 C-클래스 플랫폼인 W204를 바탕으로 X204 플랫폼을 다지기 시작했다. M-클래스보다 한 급 아래인 컴팩트 SUV를 개발하기 위해서였다. 2008년 말 첫 선을 보일 새 컴팩트 SUV는 차 길이와 높이를 줄이고 독일에서 생산할 계획이다. 그러나 개발 중반에 접어들 즈음 컨셉트를 뒤바꿀만한 일이 벌어졌다. 바로 차 이름 때문이다.
 



대우국민차의 아카디아가 잘 팔렸을까?

메르세데스-벤츠 라인업 가운데 전통적인 고성능 로드스터 SL의 컴팩트 버전은 SLK다. S-클래스를 바탕으로 초호화 럭셔리 쿠페를 상징하는 CL의 아랫급 버전은 CLK로 통한다. 자연스레 ML의 아랫급으로 등장할 컴팩트 SUV에 대해 MLK라는 예측이 흘러나왔고, 벤츠 역시 이를 부인하지 않았다. 독일 본사의 일부 담당자들은 공개적으로 MLK에 대한 프로젝트를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들의 네이밍 법칙을 따졌을 때 전혀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MLK의 최대 시장으로 떠오른 북미에선 사정이 달랐다. MLK는 곧 마틴 루터 킹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벤츠로선 청사진만 제시했을 뿐, 아직 본격적인 개발에 한창인 새 모델이 단지 네이밍 법칙 때문에 폄하되거나 거부감을 일으킨다는 사실에 화들짝 놀랐다. 결국 여전히 네바다주에서 혹서 테스트를 벌이고 있는, 디자인조차 공개되지 않은 새 컴팩트 SUV의 이름을 일찌감치 확정지었다. 마틴 루터 킹을 연상케 하는 MLK 대신, M-클래스의 위급으로 등장한 GL-클래스의 맥을 잇는다는 의미의 GLK로 결정했다.

극단적인 인종주의자들의 편견을 피해나갈 수 있고, 그들 고유의 네이밍 법칙에 어긋나지 않는 새 이름은 임기응변에 능한 벤츠의 마케팅 전략을 고스란히 보여준 예가 되었다.

이렇듯 산업사회가 고도로 발달되며 글로벌 경영을 내세우는 다국적 기업은 소비자의 감정까지 염두에 두어야할 정도로 다각화되어간다.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브랜드나 모델명에 있어서 단순히 자사의 전통이나 맥을 이어야한다는 고집을 버리기 시작했다. 쉽게 입에 오르내릴 수 있어야 하는 것은 물론, 돈을 들여 제품을 구입하는 소비자의 감정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것은 철칙이 되었다. 일본의 소니와 니콘 등이 전 세계 어느 언어권에서도 쉽게 발음할 수 있는 ‘니(Ni)’라는 단어를 브랜드 명에 포함하고 있어 일본이 세계 가전 시장을 평정할 수 있었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크다.

이런 브랜드와 모델명이 주는 거부감 때문에 판매가 신통치 않았던 예는 또 있다. 바로 폭스바겐 페이톤이다. 국내에서는 독일 명차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나 영어권에선 사정이 다르다. 특히 북미에선 폭스바겐(Volkwagen)이 이름 그대로 대중적인 차를 만드는 브랜드로 인식되어왔다. 이런 상황에 최고급 럭셔리 세단을 내세운 ‘페이톤’(Phaeton)은 고전할 수밖에 없다. 대중차 브랜드에서 만드는 럭셔리 세단에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우리로선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 세계에서 독일 다음으로 페이톤이 많이 팔리고 있다. 미국인에게 폭스바겐 페이톤은 우리에게 경차 티코를 만들던 ‘대우국민차의 아카디아’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이렇듯 많은 자동차 브랜드가 시장의 국민감정과 연관되어 있다. 여전히 포르쉐를 두고 2차대전의 전범 히틀러를 도왔던 자동차 브랜드로 폄하하는 이들이 존재하고, 이미 미국 포드의 손에 들어간 재규어조차 영국 식민지 통치 지역에선 환영을 못 받고 있다.
 



자동차는 주머니 속에 감춰지는 MP3와 다르다

우리에게도 분명 국민감정이 있다. 전통적인 가치관과 의식 속에서 자리 잡은 이런 정서는 하루 이틀에 쌓인 것이 아니고 그럴 수도 없다. 마찬가지로 하루 이틀 사이에 바뀔 것도 아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암묵적 또는 공개적으로 다져져 있기에 감정이라는 틀 앞에 ‘국민’이라는 극단적인 다수집단의 성향을 내세울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국민적인 정서를 내세울 때 늘 도마 위에 오르는 것이 일본차다. 우리에겐 여전히 일본에 대한 국민감정이 존재한다. 위안부 문제가 불거지거나 이와 관련된 일본 고위 관리의 망언이 이어질 때면 대부분 일본에 대한 국민감정이 불거져 나온다. 역사교과서 검증과 관련된 뉴스가 흘러나올 때에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몇 년 전, 독도를 둘러싸고 일본이 억지 주장을 펼칠 즈음 극단적인 생각에 빠진 일부 지역에선 혼다 차에 불을 지르는 일도 벌어졌다.  

이런 반일감정은 중국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격한 대륙성향을 가진 중국인들은 반일 시위 도중 그 옆을 지나가는 일본차를 에워싸고 운전자에게 무력을 행사하는 등 우리보다 더 격한 감정을 보이고 있다.

한국에서 차를 팔기 위한 일본 브랜드의 마케팅은 때문에 모든 면에 신중하다. 양국의 감정을 건드릴만한 뉴스가 나올 때면 마치 행동강령을 따르듯 매뉴얼에 따라 언급을 회피하고 마케팅 관련 행사를 미루거나 취소하기 일쑤다. 토요타와 닛산이 한국 시장에 진출할 때부터 렉서스와 인피니티 등 북미시장 브랜드를 내세웠던 것도 이런 국민 정서를 건드리지 않기 위한 전략이다.
 

역으로 경쟁 브랜드는 암묵적으로 국민정서와 관련된 일본차의 핸디캡을 역이용하고 있다. 광복절을 맞아 태극기를 찾는 이벤트를 공개적으로 펼치거나, 경쟁 브랜드에선 영업의 최일선에 교묘한 국민감정을 내세우기도 한다. 꾸준히 수입차 판매 1위를 고수해온 혼다가 7월 판매에서 BMW에 자리를 내주자, 광복절 특수를 노린 일부 수입차 브랜드에선 “그것 봐라”라는 표정이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일본차는 점점 세력을 넓히고 있다. 꾸준히 베스트셀러 브랜드로 이름을 올려온 혼다와 렉서스를 내세워 스테디셀러를 기록하고 있는 토요타, 최근 꾸준히 시장을 넓히고 있는 인피니티 역시 앞날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국민감정이 격해질만한 뉴스가 흘러나올 즈음에도 잠깐 판매가 주춤할 뿐이다.
 

한일관계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특정 시장에만 해당하는 경제현상으로 규정한다. 예를 들어 온 국민이 먹어야하는 쌀이라면 국민감정이 판매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겠으나 특정 부류를 대상으로 한 시장에선 국민감정이 시장에 지속적인 영향력을 미칠 수 없다는 의미다. 자동차에 관한 비전문가인 그의 입장에선 여전히 수입차 시장은 극소수를 위한 시장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일본차에 대한 국민감정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업계에선 한국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는 일본차와 달리 일본 시장에서 존재 자체가 희미한 한국 차의 차이가 좁혀져야 한다는 입장이 지배적이다. 양국의 수입차 시장 규모와 성향이 다르지만 최소한 한국차가 일본 수입차 시장에서 일정 수준의 점유율을 유지해야 일본차에 관한 국민감정에도 개선의 여지가 있다는 의미다.

1990년대 들어 일본 영화와 노래, 문화가 우리에게 들어 왔지만 우려했던 문화잠식은 이뤄지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 영화와 연예인이 한류를 앞세워 일본에서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 덕분에 이제 더 이상 TV 속에서 일본에서 건너온 연예인들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졌다. 자동차 역시 마찬가지다. 서로의 시장에서 맞설 수 있는 위치에 올랐을 때 국민감정과 무관한 소비자 중심의 자동차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다.

우리가 반일감정을 갖고 있듯 일본에서도 ‘혐한감정’을 지니고 있다. 반일과 반한감정 모두 결국 양국 모두에게 득이 되지 못할 일이다. 그래서 소수의 의견과 주류를 구별할 줄 아는 능력과 상대방에 대한 신뢰도 중요한 과제다.
 

이렇듯 자동차와 국민감정이 깊은 연관성을 갖게 된 이유는 자동차가 자기 자신을 대변하는 하나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그 탓에 국민감정은 무시할 수 없는 시장변화의 요인이다. 자동차는 주머니 속에 감춰버릴 수 있는 소니의 MP3와 다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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